내륙 오지 달천 유역으로 누가 유배 왔나…괴산 노수신·충주 이행 등

[중부광역신문  2018-11-09 오후 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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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벌에는 태(苔)·장(杖)·도(徒)·유(流)·사(死) 등 오형(五刑)이 있었다. 

이 가운데 '유(流)'는 유배(流配), 곧 귀양을 보내는 형벌이다. 

가족과 헤어져 절해고도(絶海孤島)와 삼수갑산(三水甲山)으로 기약 없이 떠나야 했던 것이 바로 귀양살이다. 


유배지로는 흔히 섬을 떠올리게 되지만, 내륙 지역인 충북의 달천 유역에도 사화(士禍) 등으로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은 관료들이 종종 귀양을 오기도 했다.

9일 충북연구원 부설 충북학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지속 가능한 달천의 보전과 활용 방안 연구' 발표에서 '달천 유역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 조혁연 충북대 초빙교수의 글이 눈길을 끈다. 

조 교수는 이 글에서 유배문화를 짚으면서 달천(達川) 유역으로 유배를 온 인물들을 열거했다. 

달천은 보은에서 시작해 청주, 괴산, 음성, 충주까지 5개 시·군을 유유히 흐른다.

먼저 노수신(盧守愼·1515~1590)을 들 수 있다. 

노수신은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로 전남 순천에 유배를 갔다가 진도를 거쳐 1565년(명종 20)부터 1567년(선조 원년)까지 괴산에서 마지막 유배생활을 했다. 훗날 벼슬이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현재 괴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된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옛길 나루터 부근에는 충북도 기념물 74호 '괴산 수월정(水月亭)'이 괴산호를 굽어보는 언덕배기에 있다.

'노수신 적소(謫所·유배지)'로도 불리던 이 건물이 노수신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이 수월정은 애초 연하동(煙霞洞)에 있었으나 1952년 착공해 1957년 준공한 괴산댐 건설로 연하동이 물(괴산호)에 잠기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1504년(연산군 10)부터 1506년까지 괴산에서 귀양살이를 한 사헌부 장령 이맥(李陌·1455~1528)은 연산군의 미움을 사서 괴산에 유배됐다가 중종반정으로 벼슬길에 다시 나섰다. 

연산군일기 10년 3월15일 자 기사에는 '이맥을 괴산에 부처(付處)했다'고 나온다.

'부처'는 가벼운 죄를 짓고 비교적 가벼운 지역에 유배되는 것을 이른다.

훗날 영의정을 지내고 청안(증평) 구계서원에 배향된 이준경(李浚慶·1499~1572)도 괴산에 유배를 온 적이 있다. 

성대훈(成大勳·1572~1636), 이익문(李益文·1796~1845), 신응주(申應周·1747~?) 등이 달쳔 유역 괴산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 밖에 이행(李荇·1478~1534)은 1504년 갑자사화로 죽산, 무극(음성)을 거쳐 충주로 유배를 왔다. 

이행은 시문집 '적거록(謫居錄)'에 고립된 유배생활을 시로 남겼다.

그는 율곡 이이(李珥)가 재종조부(할아버지의 사촌형제)가 된다.

조 교수는 달천 유역이 유배지로 선정된 데 대해 "내륙의 오지에 위치하고 하천이 영월 청령포와 같이 피유배인의 탈주를 자연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사제공 : 중부광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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